어떤 책일까?
'슈필라움. 독일어로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합니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슈필라움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나라 한글에는 없습니다. 개념이 없다면 그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슈필라움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것은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거나 그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p.6
이 책은 '김정훈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라는 책입니다. 저자인 김정훈 작가는 문화심리학자로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2012년 그림을 배우러 일본으로 떠납니다. 지난 50년 동안 누군가에게 떠밀려 살아왔음을 깨닫고 앞으로의 50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며 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포기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친 뒤에는 서울이 아닌 여수로 돌아왔다고 하는데요. 여수에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한 신문사에 글로 연재했고, 그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책이 바로 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라는 책입니다. 자신의 '슈필라움'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책으로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슈필라움 '미역창고'
'지금까지 우리는 '슈필라움'의 가치를 너무나 무시하고 살아왔다. 공간이 있으면 슈필라움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p.11 저자는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슈필라움 만들기 위해 여수로 내려갑니다. 슈필라움을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한 일은 공간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횟집을 하다 망해서 창고로 변해버린 공간을 빌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공간을 아무리 열심히 꾸민다고 한들 새 들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언제든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주인이 팔 생각도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른 공간을 찾게 됩니다. 저자는 지인의 도움으로 두 번째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미역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저자는 이 미역 창고를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결국 미역 창고를 구입하게 됩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반대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교환 가치가 아닌 사용 가치에 중점을 두고 미역 창고 구매를 결정하게 됩니다. 기어코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됐지만 미역 창고를 작업실로 고치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에 부딪히게 됩니다. 작업실 공사 중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난리가 나기도 하고, 섬에 있는 작업실이다 보니 공사하는 데 생각지도 못한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외딴섬에 혼자 내려와 있으니 외로움이 수시로 찾아오는 등 많은 고초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의 슈필라움인 미역 창고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가져본 경험이 있을까요? 아니면 언제쯤 나만의 슈필라움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우리들은 나만의 슈필라움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 작업실을 만들어서 취향에 맞게 배치를 조금씩 바꿔보거나 답답한 날 집을 떠나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거나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등 본인만의 슈필라움을 찾아나가면 좋습니다. 나만의 슈필럼이라고 해서 꼭 대단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처럼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인테리어를 할 수는 없을지라도 잘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나만의 슈필라움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만의 슈필라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나만의 슈필라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p.12
감상평
책의 큰 흐름은 저자의 슈필라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책의 모든 내용이 이 슈필라옴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슈필라움 외에도 걱정에 대한 이야기,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든 슈필라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깨달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가 자신만의 슈필라움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도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좀 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조금 더 생긴다면 나만의 슈필라움인 작업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왕이면 저자가 슈필럼을 완성한 후에 그곳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슈필라움, 즉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시는 분들은 저자의 슈필라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어볼 용기를 얻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은은하게 조명도 밝히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도 쭉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p206
사람이 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주변 환경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항상 소파에 앉아 TV만 보고 있다면 결코 지금과 다른 변화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TV를 치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두는 것만으로도 책 읽는 사람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다른 새로운 공간을 찾아감으로써 환경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인생이 있다면 그 인생을 살 수 있는 환경 안에 있어야 그런 인생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나만의 슈필라움에 대해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